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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과 관련해 재검토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엠제트(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것을 지시했다.
1. 윤 대통령 "근로시간 개편 보완검토하라"
2. 비현실성에 분노
3. 앞뒤 바뀐 정책 강조
4. 대세를 거스르는 개혁
5. 우리가 처해있고 바라보는 현실은
6. 도움 되는 다른 내용도 살펴보세요.
[당신의 근무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자]
[윤 대통령 "근로시간 개편 보완검토하라"]
“장기휴가 비현실적” “공짜야근 우려”에… ‘주 69시간’ 손볼듯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과 관련해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내놓은 짧은 서면 브리핑 자료만 봐서는 무엇을 어떻게 재검토하라는 건지 알기 어렵다. 분명히 명토 박아 둘 것은, 직접 이해당사자인 노동계 의견 수렴도 없이 상륙작전하듯 제도 개편을 밀어붙여온 그 기조부터 바꾸지 않으면 결코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엠제트(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것을 지시했다. 노동시간 제도 개편은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발언으로 시작해 직접 진두지휘해온 ‘노동 공약 1호’ 정책이다. 지금까진 뭣 하다가 마치 남 얘기하듯 재검토를 지시한 모양새부터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인다.
윤 대통령 지시에서 도드라지는 건 엠제트 세대를 콕 집은 대목이다. ‘엠제트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가 지난 9일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이번 지시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오는 22일 부랴부랴 엠제트 노조 쪽과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거세게 몰아붙이면서도, 엠제트 노조에는 허둥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엠제트 노조는 국민의힘 지지층이라 생각하는 건가. 또 그동안 청년들이 원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개혁’을 추진한다고 주장해놓고 이제야 청년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의견을 듣겠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
[비현실성에 분노]
정부 발표에 대한 ‘직장인의 분노’는 우선 전문가 논의를 바탕으로 만든 개편방안이 “비현실적”이라는 데 집중됐다. 법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몰아 쉬기’는 구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차휴가를 쓰기 위해 상사를 안마해 기분을 맞추고’, ‘직장생활 몇 년 차냐며 모욕을 겪는’ 사례가 공감을 얻었다. 제도가 구현되기 어려운 다양하고 열악한 ‘현실 일터’는 법 개정안 마련 과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입법예고 이후에야 거센 여론으로 분출됐다.
정부는 입법예고에 앞서, 지난 2월 24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 대국민 토론회’를 열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폭넓은 노동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했다. 당시 토론회에는 엠제트(MZ)세대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를 빼면 모두 학계 전문가만 참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도 “엠제트(MZ)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이 보장하는 휴식권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모든 세대에 걸쳐 분포된 소규모 사업장, 하청·비정규직 등이다.
최근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 월 임금 150만원 미만(55.6%)이거나 5인 미만 사업장(49.4%)에서 일하는 경우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답한 비중은 절반에 가까웠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동 제도는 결국 현실에서 구현돼야 하는데 전문가 논의만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노동 현장에서 벌어질 (제도 개편에 따른) 부작용이나 우려 지점을 파악할 수 없는 만큼 (법 개정안) 설계 과정에서 노동자와 대화해야 했다”며 “개편방안을 내놓은 정부의 좌충우돌은 사회적 대화의 공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앞뒤 바뀐 정책 강조]
정부는 개편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휴식권’ ‘선택권’ ‘건강권’을 위한 조처들은 대체로 장시간 노동, 건강권 침해 우려 논란이 일어난 이후 보완됐다. 지난해 6월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놓고 주 최대 9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논란이 일자 뒤늦게 11시간 연속 휴식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제도 발표→논란→보완을 반복이 이어졌다. 특히 노동자의 노동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들은 개편방안에서도 실효성이 없거나 연구과제에 그쳐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가령, 근로자 대표제의 제도화는 사용자가 선출 과정에 개입할 경우 ‘벌칙 조항’이 없어 ‘회사 편인 근로자 대표’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정부 스스로 ‘선결과제’로 표현한 노동시간의 투명한 관리 또한 연구과제로 남겨뒀다. 주로 경영계의 요구로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연장근로 단위 확대 방안이 개정안에 담긴 것과 대조된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근로자 대표제를 통한 노조 없는 노동자의 협상력 강화, 포괄임금제 금지, 사용자의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 같은 전제 조건이 갖춰져 직장인과 회사의 힘이 대등해져야 그나마 노사의 자율적 합의를 통한 노동시간 선택권을 얘기할 수 있다”며 “개편방안의 추진과 설명 과정은 이런 선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평가했다.
[대세를 거스르는 개혁]
정부는 개편방안이 실행되면 분기·연 단위로 사용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을 줄여 ‘연간 실근로시간’을 단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 최대 80.5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개편방안은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던 과로사회로의 회귀로 여겨졌다. 더구나 휴가 사용의 어려움, 몰아치기 노동, 예측 불가능한 근무 스케줄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개편방안으로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정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다.
2018년 도입된 주 최대 52시간 노동제는 주 단위 노동시간 관리로 실제 노동시간을 줄여왔다. 주 52시간제 시행 전인 2017년 244만7천명에 이른 주 52시간 초과 근무 노동자는 2021년 100만1천명까지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그에 따라 연간 노동시간도 2018시간에서 1915시간으로 줄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지향점이 대세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방향을 되돌린 과거 회귀적인 정책에 반발이 큰 것은 당연했다”며 “여기에는 노동자의 현실적인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개편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개편방안과 관련된 우려를 오해라고 일축했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 원칙에 대해 변함이 없다. 그런데 자꾸 ‘주 69시간 근로’라는 프레임으로 와전된다. 더욱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얘기가 나오니 긴밀히 소통해 고칠 것은 고치라는 취지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입장문을 내어 “개편방안과 관련하여 일부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잘못된 오해가 있다”며 “제도 개편방안의 내용과 우려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주 52시간을 69시간(주 6일 근무 기준)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선택권·건강권·휴식권의 보편적 보장’, ‘시간 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 진일보’라 했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통해 ‘제주 한달 살기’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여론의 싸늘한 반응에는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잘못된 오해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처해있고 바라보는 현실은]
있는 연차휴가도 못 가는 판에 ‘제주 한달 살기’는 뭔가. 지금 누가 현실을 오해하고 있나. 정부가 ‘세대 갈라치기’에 기대 여론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엠제트 노조 앞으로 달려가기 전에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온 역사와 최근 흐름부터 살펴보며,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철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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